'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광기, 숨겨진 진실은?

루이스 캐럴의 명작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주인공 앨리스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엉뚱한 수수께끼를 내고 시종일관 부산하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모자 장수(The Mad Hatter)’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별난 행동을 단순히 동화적 상상력의 산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독특한 캐릭터 설정 뒤에는 18세기와 19세기 유럽 노동자들을 괴롭혔던 끔찍한 직업병의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름다운 모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이 치러야 했던 비극적인 대가, 바로 수은(Mercury) 중독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화학 물질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그림자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펠트 모자 뒤에 감춰진 은빛 저주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상류층에게 빳빳하고 윤기 나는 펠트 모자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모자 장인들은 비버나 토끼의 털가죽을 이용하여 펠트 천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털을 부드럽게 만들고 서로 잘 엉겨 붙게 하기 위한 중요한 화학 처리 공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캐로팅(Carroting)’이라 불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약품은 주황색을 띠는 ‘질산수은’이었습니다. 모자 장인들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좁은 공방에서 하루 종일 뜨거운 수증기를 쐬며 작업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질산수은이 기체 상태로 증발했고, 작업자들은 숨을 쉴 때마다 고농도의 수은 증기를 폐로 직접 들이마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수은은 상온에서 유일하게 액체 상태인 금속이며, 기체 상태로 변했을 때 흡수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수은은 뇌혈관 장벽을 뚫고 들어가 중추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습니다. 수은에 중독된 모자 장인들에게는 손과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 발음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그리고 극심한 감정 기복이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온순하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거나,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심한 경우 환각을 보며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증상이 수은 때문인 줄 모르고, 모자 만드는 일을 오래 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고만 생각하여 "As mad as a hatter (모자 장수처럼 미친)"이라는 관용구까지 생겨났습니다. 동화 속 모자 장수의 기이한 행동은 사실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가 아니라, 심각한 수은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식탁은 안전한가요? 수은의 그림자

수은은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신비로운 물질로 여겨지며 불로장생을 꿈꾸는 약재나 화장품, 심지어 매독 치료제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은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단백질의 구조를 파괴하고 효소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특히 수은은 배출되지 않고 우리 몸의 지방 조직, 그중에서도 지방이 많은 ‘뇌’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모자 장인들이 겪었던 손 떨림(Hatter's shakes)은 뇌의 운동 신경이 파괴되면서 나타난 신호였으며, 성격의 변화는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면서 나타난 비극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모자를 만들 때 수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은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수은을 접하게 되는 가장 주된 경로는 바로 ‘해산물 섭취’입니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수은은 플랑크톤에서 작은 물고기로, 그리고 다시 큰 물고기로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가며 농축됩니다. 이를 ‘생물 농축(Bioaccumulation)’이라고 합니다. 참치, 황새치, 상어와 같은 최상위 포식자일수록 체내 수은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산부에게 참치 섭취를 조절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도 바로 태아의 뇌 발달에 수은이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자 공방의 수증기는 사라졌지만, 오염된 바다가 보내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보이지 않는 위험, 현명하게 대비하는 지혜

모자 장인의 광기 사건은 화학 물질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사용했을 때 인간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주는 서글픈 역사입니다. 우리는 미네랄이 건강의 필수 요소라고 배우지만, 수은처럼 인체에 백해무익하며 치명적인 미네랄도 존재합니다.

오늘 저녁, 가족의 식탁에 오르는 생선의 종류를 한 번쯤 확인해 보고, 생활 속에서 무심코 접하는 형광등이나 건전지 같은 폐기물을 올바르게 분리 배출하는 것. 그것이 과거 모자 장인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 가족의 뇌 건강을 지키는 작지만 확실한 실천이 될 것입니다.